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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정보관 소식

서평쓰기 최우수작 '영혼에 관하여' - 큐레이터과 이채영 -

by dd100 2018. 5. 9.

서평쓰기 최우수작               

 큐레이터과   이채영

‘철학’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정의를 스스로 정립하지 못한 채 철학에 대한 막연한 어려움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철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바로 교양 수업 중 들었던 말 때문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철학이란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무언가 심도 깊고 어려운 내용이 전반에 깔려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철학이 순식간에 친근하게 다가왔다. 좀 더 생각해본 결과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것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게 가장 어렵고 끊임없이 답을 도출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라 결론을 짓기는 했지만 말이다. 근본적인 것에 대한 답을 내리면 그 아래 하위 항목에 대한 답이 자연스레 따라오겠지만 그 하위 항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그 마저도 무리일 것이지 않은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왜 유명 철학가들이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수많은 분야에 흥미를 보이고 연구를 하였는지 알 것 같았다.

  앞서 말한 별 것 아닌 변화로 나는 ‘철학’이라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이것에는 고전 철학 서적에 대한 흥미도 자연스레 함께 했다. 하지만 고전 철학가들의 책을 고르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저서는 굉장히 많았고, 내가 그 중에서 읽어보았던 책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적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의 저서들은 같은 저자 아래서 독립적이지 않고, 유기적인 성질을 띄우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 중에서 어떤 저서를 선택해서 읽어야 할 까는 큰 고민이었다. 단순히 대표적 저서를 읽을 까, 라고도 생각을 했지만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 다른 저서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무작정 도서관에 찾아가 저자 이름을 검색한 뒤 저서 이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서들을 살펴보다가 눈에 띈 책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영혼론)』이다. 의사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적부터 생물학, 자연과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며, 『형이상학』,『니코마코스 윤리학』,『시학』등 다양한 분야에 대표 저서를 남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인간의 근본이자 모든 생명체의 근원인 ‘영혼’은 대체 어떤 것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억과 상기에 관하여』,『삶과 죽음에 관하여』등 심리 철학적 분야에도 다양한 저서를 남겼지만 이 모든 것의 상위 개념에는 ‘영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적 저서들은 한국에서 여러 출판사들, 번역가들에 의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같은 저서더라도 출판사마다, 역자들마다 설명하는 용어가 다르며 책의 내용을 풀어가는 과정조차도 다르다. 이러한 부분에서 책을 고른 뒤에도 번역이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어느 ‘역자의 책’을 고를 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가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된 책은 단 2권으로 선택의 폭이 넓지는 않았다. 두 권의 책은 출판 연도부터 2001년과 2016년으로 차이가 많이 났는데, 시대의 흐름을 조금 더 반영했을 후자의 책을 읽을까 하다가 책의 목차를 보고 전자의 책을 읽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전자의 경우에는 5분의 1정도의 분량을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선행이해와 다른 관련 저서들과의 연관성에 대해서 설명한 뒤 Ⅰ, Ⅱ, Ⅲ권으로 구성된 원문을 그대로 전개해 나아가는 방식을 취했다. 반면에 후자는 무척 간단한 프롤로그를 다룬 뒤Ⅰ,Ⅱ,Ⅲ권으로 구성된 원문대로 다루지 않고 핵심 개념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했다. 사실 『영혼에 관하여』  자체만을 이해하고 싶다면 후자의 책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자의 책의 역주인 유원기 씨가 말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 가운데 어떤 하나만을 읽고서는 그 안에서 어떤 ‘완결된 사상’을 찾기는 어렵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은 다른 저서 안에서 논의되고 결론 내려진 이론들을 전제하고 있을 것 같았다. 단순히 한 권의 책을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한 철학가에 대한 이해 또한 함양하고 싶었기 때문에 출판사 궁리에서 출판한 유원기 역주의 『영혼에 관하여』를 고르게 되었다.

 『영혼에 관하여』는 Ⅰ,Ⅱ,Ⅲ의 총 세 권으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이 저서들은 한 시기에 함께 집필된 것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집필된 시기는 Ⅲ권이 기원전 348/7-335년에 먼저 집필되고, Ⅰ,Ⅱ권이 그 후인 기원전 335-322년에 집필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의 집필시기를 판단하는 방법은 저서들 안에 플라톤적인 요소가 얼마나 많이 또는 적게 나타나는가에 따른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Ⅰ권에서는 기존의 이론들에 대한 소개, 평가, 그리고 비판 등으로 구성되어있는 반면 Ⅱ, Ⅲ권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견해와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어 살짝 의아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Ⅲ권에서는 플라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처럼 영혼과 신체의 분리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 후에 Ⅰ권에서 다시금 기존 이론들에 대한 연구를 행한 다음 Ⅱ권에서 영혼을 정의하고, 영혼과 신체의 비분리성을 강조하는 자신의 변화된 입장을 내놓은 것 같다. 하지만 Ⅲ권에서 Ⅱ권에 먼저 논의된 감각에 대해 연장선상에 놓이는 또 다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며, 사실 상 어떠한 책에서도 명확한 결론을 내고 끝내는 권이 없어 이러한 집필시기의 앞뒤에 대한 주장은 내용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Ⅲ,Ⅰ·Ⅱ권 순으로 집필 시기는 주장되어 지고 있지만 이 책에서 전개되어지고 있는 데로 Ⅰ,Ⅱ,Ⅲ권 순으로 이해를 하였다.

Ⅰ권은 영혼 탐구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영혼에 관해 탐구해야 할 아홉 가지 문제들을 제시하면서 시작한다.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 중 하나였던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영혼 탐구의 목적을 영혼이 생물들의 제일원리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지식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며, 그 중 어떤 것은 정확성 때문에, 또는 더 좋고 훌륭한 대상들을 다루기 때문에 다른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러한 두 가지 이유에서 영혼에 관한 탐구를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혼 탐구의 목적을 제시하는 이 부분부터,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혼’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막연한 무언가로 보는 것이 아닌, 우리의 근원에 존재하지만 피상적으로 증명하고, 그 작동원리를 탐구해 나아가고자 한다고 느꼈다. 사실 나는 ‘영혼’에 관하여 인간이 사유할 수 없는 인식 저편의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접근은 흥미로웠다. ‘영혼’을 구성하는 원소들과 그 원소들이 상호작용하며 작동하는 원리를 깨우친다면 ‘영혼’은 충분히 조작될 수도 있으며 창조될 수도, 제거될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목적을 앞에 두고 기존의 선배 철학자들이 제시한 ‘영혼을 가진 것’의 특징인 운동 또는 감각, 혹은 둘 다를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영혼이 공간성을 가진다던가, 영혼 자체가 운동할 수 있다는 식의 영혼과 신체의 분리성에 대한 긍정을 표하는 주장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부정하며 Ⅰ권 마지막 부분에 영혼은 신체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운동하거나, 감각하거나, 지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또한 영혼은 분리 될 수 없는 존재들이지만 영혼 전체는 잘려진 부분들 안에 있는 영혼과 같은 존재라고 말하였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식물을 예로 들은 것을 바탕으로 이해하면 더욱 더 빠르게 다가온다. 식물들과 일부의 동물들은 잘려져도 생존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잠깐이나마 잘려진 부분에도 잘려진 조직 혹은 신체부위와 마찬가지로 함께 잘려나간 영혼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렇게 잘려진 각각의 부위들은 한동안 감각하며, 장소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잘려진 부분에는 이러한 감각을 유지할 다른 조직이 아무것도 없기에 이러한 작용은 금방 없어진다고 하지만 이것은 나에게 꽤나 흥미로운 주장으로 다가왔다.

  이는 Ⅱ권의 영혼의 정의와도 연관성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생명을 잠재적으로 가지는 자연적 신체의 제일 현실태’라고 주장한다. 이는 곧, 생명이 전제되지 않는 다면 영혼을 가질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이를 앞서 말한 주장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보면 잘려져 나간 부위에 존재하는 영혼은 곧 생명이 존재하지 않게 되고, 자연스레 그 안에서 영혼 또한 그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대한 정의에서 거론되는 ‘현실태’는 질료현상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영혼에 대한 탐구는 자연에 관한 탐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던 걸로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는 개별자 속에 존재하며 구체적인 사물과 떨어져서 존재 할 수 없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관점 속에서 개별자의 존재를 궁금해 한 것이었는데, 개별자는 단순히 우리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상이 있어야 하며 이러한 형상은 우리가 누구인지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반면에 그러한 형상이 가능하게끔 만들어주는 내적인 무언가도 있어야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운동성을 지닌 질료라고 표현했다. 형상은 곧 현실태이고, 질료는 곧 가능태로 정의될 수 있다. 『영혼에 관하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현실태와 가능태를 각각 ‘영혼’와 ‘신체’로 대체하여 표현한다. 이러한 기본 바탕을 근거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혼에 대한 정의를 내린 것을 보면 신체를 영혼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재료로 본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는 다시 단순히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영혼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신체와 영혼의 상관관계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풀리면 신체와 더불어 영혼이 존재하기 위해 선행되어 존재해야만 하는 ‘생명’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의 능력 다섯 가지인 영양섭취능력, 감각능력, 욕구능력, 장소운동능력 , 그리고 사고능력을 제시하였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영혼이 가진 능력들 말이다. 이와 함께 생물이 어떠한 능력을 가졌느냐에 따라 식물과 비지성적인 동물, 그리고 지성적인 동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영혼들의 능력과 그에 따른 생물의 구분에 대한 논의는 Ⅱ,Ⅲ권 내내 이루어진다.

  영혼의 다섯 가지 능력 중 내가 가장 중점으로 생각한 부분은 바로 감각능력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들을 식물들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이 감각능력이라 하였으며, 동물들은 무엇보다도 감각 때문에 생명을 갖는 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감각이 있기 때문에 바로 욕구능력이 생기는 것이고 이어서 장소운동능력을 갖는다. 간단히 정의 내릴 수 없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식물을 제외한 영혼을 가진 동물들의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감각할 수 있음’으로부터 시작한다. 감각은 느끼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동물은 다음 행위를 한다. 긍정적인 감각작용이면 그 쾌락이나 즐거움을 주는 대상을 추구하며, 반대로 부정적인 감각작용이면 그 고통을 주는 대상을 피하려 한다. 이러한 운동은 곧 장소운동능력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인간의 경우에는 사고능력으로 이어진다.

 이쯤까지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보편적으로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생물에 관해서만 이론을 펼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영혼의 능력 중 영양섭취능력만을 가진 식물들에 대한 언급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Ⅲ권 후반부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자신의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자연의 모든 만물들은 어떤 것을 위해 존재하거나, 또는 어떤 것을 위해 우연적인 것들일 것이다. 따라서 만약 장소 이동할 수 있는 어떤 신체가 감각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을 것이고, 그러므로 그것의 자연적인 기능인 목적에 도달함을 성취하지 못할 것 이다. …중략… 왜 감각을 가져야 하는가? 영혼의 더 나은 선을 위해서 또는 신체의 더 나은 선을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둘 다 아니다. …중략… 그렇다면 고착된 어떤 신체도 감각이 없이는 영혼을 갖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고착생물은 식물은 물론 갑각류와 같은 일부의 동물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동물’인, 움직일 수 있는 생물인 갑각류와는 다르게 식물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은 영혼을 가진 최하위의 생물을 다루는 것만 같다. 『영혼에 관하여』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상 하위 개념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도식화 되어있다. 이러한 경우에서 영혼의 능력 다섯 가지 중 하나 밖에 소유하고 있지 못한 식물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언급할 가치가 그다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부분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를 읽으며 아쉬웠던 부분이다. 영혼이라는 비물질적인 것을 자신의 질료 현상론을 들어 현실태라 규정하고 영혼의 능력을 제시하여 그에 따른 생물을 구분하는 것. 너무나 도식화되어있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부분을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시도는 인상적이지만 그의 이론은 그다지 나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이론이었다. 또한 그가 구분한 식물과 비지성적인 동물, 그리고 지성적인 동물 세 가지 생물에 대한 구분에 맞게끔 비중을 비슷하게 두거나, 혹은 식물이 가지는 영혼 능력의 한계를 더욱 더 제시해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에게 감각능력이 없다 말하면서 자연스레 감각능력의 하위 능력들의 가능성까지도 부정하였다. 하지만 오늘 날 여러 과학실험에서 식물 또한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거나 경계를 한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것이 장소운동능력과 사고능력으로 이어져 가는 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였던 감각능력에 대한 부정은 틀린 것이다. 기원전 세기의 사람이고, 수많은 철학자들의 우상이지만 『영혼에 관하여』는 다루는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다른 저서들 보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영혼에 관하여』 저서 하나만으로도 이원론적 해석, 유물론적 해석, 기능주의적 해석, 무변화적 해석, 본질주의 적 해석 등 수많은 관점에서의 해석이 가능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저서들과의 상관관계도 무시할 수 없으니 그를 이해하기에는 꽤나 의미 있는 저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철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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